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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여행 길에 샌 안토니오에 들렸다. 사실 친구가 있기도 했던 이유와 더불어 오스틴에 생각보다 너무 할게 없다는 것이 복치와 나를 샌 안토니오로 이끌었다. 주변에 갈만한 근교가 샌 안토니오만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많이 들었던 곳이자, 하마터면 내가 갈 뻔(?) 했던 곳이었기에 이번 기회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컸다.

도시 중심부에 River walk라고 해서 물길을 따라 관광할 수 있는 시설과 식당들이 있었고, 가까운 곳에 Alamo라고 하는 유적지가 있어서 발길을 향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보았던 흥미로운 광경을 보고 들었던 생각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Alamo는 꽤 유서 깊은 곳이었다. 텍사스가 미국의 소속이 되기 전 ‘텍사스 공화국’ (Republic of Texas)였던 시절이 잠시 있었는데, 그 시절에 미국의 요새로 활용되던 시설이었다. 1800년 대의 자취와 더불어 그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의 동상들이 있어 꽤나 운치있는 곳이었다. 한참 그 느낌에 빠져 앞을 서성이던 중 꽤나 흥미로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길 위의 결혼식?

예복을 갖춰입은 두사람과 그 앞에 보이는 제법 근엄한 아주머니(?), 그리고 이 광경을 열심히 담고있는 카메라맨까지, 제법 낯선 풍경이다.

처음에는 무슨 촬영현장인가 하고 지나가려했는데 자세히 보니 제법 그 구성이 범상치 않았다. 턱시도를 입은 남자와 짧지만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여자분, 그리고 그 앞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낭독하고 있는 근엄한 아주머니, 이모습을 라이브로 방송하고 있는 듯한 친구(?)까지 영락없는 결혼식 현장이었다.

“잠깐, 근데 여긴 그냥 샌 안토니오 유적지 앞 광장인데?”

한국서도 제법 아름다운 곳들에서는 웨딩 스냅을 촬영하는 경우를 종종 봤기때문에 턱시도나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 어색하진 않았지만 그 주변 사람들과 풍경이 사뭇 달랐다. 대포같은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 아마 수십만원은 받았을 사진사 대신 아이폰(심지어 아이폰도 좀 된 것 같아 보였다)을 든 친구가 결혼식을 생중계하는 모습이라니.

복치는 앞에 서계신 아주머니가 아마 판사일 것 같다고 했다. 자세히보니 왼쪽 어깨에 뭔가 휘장같은 것도 있고, 그럴듯한 가운까지 걸치고 제법 나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하얗게 샌 머리가 어느정도 연륜이 있음을, 누군가의 결혼을 주관할 짬은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중 무엇보다도 절정은 아마 신부가 신고있던 쪼리가 아니었을까? 색다른 풍경에 이리저리 살펴보던 나는 쪼리를 신고있는 신부의 모습에 미소가 나왔다. ‘그래도 나름의 결혼식인데 쪼리라니~’ 다행히 그 쪼리가 눈에 띄지 않을만큼 둘은 진지해보였고 제법 어울렸다.


초대받은 하객은 없어요 길에 있는 모두가 하객인걸요

자세히 보니 저 역사적인 현장의 중심에 있는 4명 말고는 함께하는 이들이 없는 듯 보였다. 내가 살면서 본 가장 심플한 결혼식이 아닐까. 하객없는 결혼식이라니. 물론 우리나라도 팬데믹이 강타했던 지난 몇 년동안 ‘하객없는’ 혹은 ‘하객 적은’ 결혼식을 많이 해왔지만 그래도 구색은 맞추려고 해왔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발적’ 하객들. 다들 무슨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들 넷이서만 하는 결혼식인가 하고 더 넓은 시야로보니 의외의 하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길 위를 지나던 관광객들, 주민들이었다. 이들은 저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이 광경을 보면서 각자의 옆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 작은 결혼식이 우리에게만 신기한 것은 아니었나보다. 어느샌가 적지 않은 수의 ‘자발적’ 하객들이 모여있었고 각자 저마다의 감정과 공감을 느끼며 이 둘의 이벤트를 축하하고 있었다.

저 결혼식의 축하를 위한 ‘자발적’ 하객들은, 결혼식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 순간의 감동과 공감을 느끼며 함께 축하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모인 것 같았다. 결혼식이라는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결혼을 할 수 있다면 이런 결혼식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뭣이 중헌디?

저 모습을 보고 있다보니 새삼 한국에서 참석했던 결혼식이 떠올랐다. ‘결혼 관계자’들과의 친분을 고려한 적절한 축의금 선택, 봉투를 건네고 받는 시가 5~10만원 상당의(?) 식권, 부모님들의 잘 차려입은 한복, 하루만에 쓰고 버려질 수백 송이 꽃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지속되는 30분 남짓의 시간..

한국의 ‘흔한’ 결혼식 풍경

나름의 규칙과 패턴이 정해진 것이 준비하는 이들과 축하하는 이들로 하여금 예측 가능한 범위의 행동과 기대를 하게 해준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 댓가가 너무 비쌌다. 30분에 수천만원이 오고가는 현장이 어떠한 의미에선 ‘수금의 현장’, ‘인맥 관리의 현장’ 처럼 보여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렇게 친분이 없는, 하지만 예의상 가야하는 결혼식에서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이런 패턴이 있으면 이를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있는 법, 결혼식을 작게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사람들도 요즘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그동안 뿌린 품앗이(?)를 회수해야하는 부모님의 입장을 고려하면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한국에서의 ‘스몰 웨딩’은 말 그대로 작은, 간소화된 결혼식이 아니라 더 작고 응축된, 그래서 못지 않게 비싼 결혼식이라는 것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눈 앞의 한쌍은 어느새 ‘카메라맨’ 친구가 건네준 반지를 나누어 끼고 있었고, ‘자발적’ 하객들은 누구 할 것없이 박수와 함께 축하해주고 있었다. 지나치는 길에 우연히 접한 이 작은 결혼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한국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이상, 내가 스스로 이들처럼 과감한 선택을 하긴 힘들 것 같다. 결혼식은 ‘둘만의’ 결혼식이 아니라는 말이 있듯, 나의 욕심만 부리다 다른 실망하는 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은 결혼식은 그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자유로운 결혼식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이라는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결혼을 할 수 있다면 이런 결혼식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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