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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여유가 있을 때마다 여행을 다니려고 노력해왔다.

 

사실 재밌는 건 대학시절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미국 대신 유럽을 택했는데 내가 언젠가 미국으로 나올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믿고 있었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특히 한국에서 출발하는 게 아닌 미국 안에서나 (한국에서 직항이 없는) 갈 법한 여행지를 또한 많이 다녔다.

 

당연히 그런 곳의 관광 시설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들과 비교해서 부족 했다. 또한 아시아에서 출발해서 오기 힘든 여행지다 보니 걷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아시아인은 복치와 나 둘 뿐임을 돌연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장점 또한 많이 있었는데, 우선 내가 한국에서 출발 했더라면 절대 가보지 못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컸고, 상대적으로 한국에는 덜 알려진, 하지만 미국인 혹은 외국인들에게는 유명한 지역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보통 그런 지역을 여행할 때면, 숙박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호텔아닌 Inn(번역하면 여인숙? 쯤 되려나 싶지만 그래도 콘도스러운 곳)이나 모텔 등에 묵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참고로 미국의 모텔은 한국의 모텔과는 용도(?)가 많이 차이 나는 것 같다. Motor + Hotel 에서 유래된 어원에 충실하게 말 그대로 장거리 운행 중 들려 잠을 청하는 목적으로 주로 이용한다. 숙소의 생김새 또한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니 그런 생각도 들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대부분의 모텔은 기본은 갖추고 있는 깔끔한 경우가 많고 조식도 기본으로 제공하기도 해서 즐겨 이용했는데, 얼마전 나의 이러한 관대한 인식을 깨준 모텔을 접하게 되었다.

 


 

일전에 가족과의 여행에서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Joshua Tree National Park)에 대해 너무 인상 깊었기에 굳이 시간을 내서 한번 더 복치와 갔었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인근에 있는 29Palms(도시 이름이다)에서 묵고 모하비 사막을 건너 라스베가스로 넘어가려는 계획을 세웠다.

 

모하비 사막을 건너는 여정이 가로등, 가게 하나 없이 사막 벌판을 200km 넘게 운전해 가야 하는 고난이도 일정이었기에 조슈아 트리 구경이 끝나고서 저녁 시간에 이동하기엔 무리가 있다 생각해서 선택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29Palms의 숙박 시설의 가격이 비쌌다. 내가 알던 모텔들은 가격이 착했는데…?

 

고르고 고르다 결국 복치가 다른 곳보다 많이 저렴한 모텔을 골랐고, 우리는 “사실 어딜 가든 거기서 거기더라”라는 말로 위안했다.

 


 

 

기분 좋게 조슈아 트리 구경을 끝내고 저녁 식사 전 숙소에 체크인 하러 간 우리는 말 그대로 경악 할 수밖에 없었다.

 

체크인 장소부터 올라가는 계단까지 시끄럽게 모여 떠들던 사람들, 커튼도 치치 않은 방에서 흘깃 보이는 문신 가득한 여자 아이들이 무반주로 술을 마시며 춤추고 있는 모습, 거기에 피날레로 우리가 들어갈 방문 앞에서 마약을 했는지 눈이 반쯤 풀려 우리를 쳐다보고 있던 10대(?) 쯤 되어보이는 친구 까지…

 

미국의 다양성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그 광경을 보고 그들 한가운데서 1박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방으로 들어간 복치와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짐을 두고 나와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서 우리는 조금씩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꺼냈다.

 

“우리 차 여기에 주차하면 안될 것 같은데?”

미국은 차량 도난이나 파손이 꽤 빈번하기에 한국처럼 차안에 귀중품을 두고 다니지 않는다. 또한 우범지역에 가면 그 가능성이 더욱 커지기에 주차는 가급적 안전한 곳에 하려고 한다.

 

당시 운좋게 좋은 차(아우디)를 빌렸던 지라, 우범지대라고 전방위적으로 소리지르고 있는 그곳에 차마 주차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 하자니, 그 또한 불안하고..

 

“그냥 우리 지금 바로 라스베가스로 갈까?”

 

저녁을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던 와중 문득 들은 ‘차라리 어둠 속을 운전해 가는게 낫겠는데?’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고, 복치도 이에 동조했다.

사실 우리 둘다 너무 불안했나보다.

 

빠르게 라스베가스에 호텔을 예약했다. 놀랍게도 메인 스트립과 가까운 곳이었는데 29Palms의 그 위험한 모텔보다도 가격이 저렴했다. 역시 바가지였어 젠장.

 


 

결국 어둠 속 사막을 달리고 달려 베가스에 도착했고, 검색을 해보며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묵으려 했던 지역이 미국 내에서 범죄가 많은 지역 중에 하나로 꼽힌다는 사실이었다. 일전에 가족여행에선 좋은 호텔에 묵어서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총기 사고가 많은 미국인 만큼 우리는 항상 위험은 사전에 예방 하고 돌아 가자 라고 생각해왔지만 이번만큼은 가격에 휘둘려 실수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린 피곤했지만 옳은 결정이라 서로를 위로하며 피곤한 몸을 뉘울 수 있었다. 다음엔 가격도 중요하지만 너무 싼데는 가면 안되겠다 생각하며.

 

 

 

올리버 쌤 영상에서 보면 미국 모텔들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한다. 침대 밑 핏자국까지 보여주니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내가 방문했던 모든 곳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이번 일을

통해 확실히 조심해야 겠다고 자각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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