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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를 보면 고등학생들이 부모님의 픽업 트럭을 운전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한 때는 그런 장면들을 보며 ‘얘들은 운전도 빨리 시작하네’ 하는 생각에 부러워했던 적도 있었지만 운전을 수시로 하는 지금에 와서 보면 굳이 일찍 시작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미국은 만 16세부터 운전 면허 취득이 가능하다. 미국에 처음 도착해서 DMV(운전면허 발급을 위한 기관)을 갔을 때 고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미국애들이 부모님과 함께 와서 기다리고 있다 모습을 봤었는데 아마 그 친구들이 집에 가면 픽업트럭을 운전 하러 나가겠지.

운전하는 10대들

쉬이 영화에서 보는 모습은 그 아이들이 신나서 창문에 걸터 앉기도 하고 고성방가를 하며 과속하는 모습이어서 처음 미국 나올 때는 저런 아이들이 도처에 즐비하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내 생각과 다른 미국 운전 문화

하지만 나는 내 예상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도로는 내 생각보다 평온했고 오히려 과속 하는이도 없었다. 물론 내가 살던 동네 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한 몫 했으리라. 놀랐던 포인트들을 적어 보자면 아래와 같다.

  • 횡단보도에 미처 다다르지도 못한 나를 위해 차를 멈춰 세우고 기다려 주는 운전자
  • 과속 카메라가 없어도 누구 하나 과하게 속도 내는 이가 없는 동네 도로
  • 신호등이 없어도 Stop 사인에 먼저 도착할 순서에 따라 순서를 기다리는 차량들
  • 양보를 받을 때면 기분 좋게 손을 들어 감사 혹은 미안함을 표현 되는 운전자들

특히 무엇보다도 첫 번째, 횡단보도에 미처 도착 하지도 못한 나를 위해 멈춰선 운전자를 보고선 혹시 차에 문제가 있어서 세운 건강 하는 착각도 했었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광경이었기에.

미국에선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들어서면 누가 뭐라할 것 없이 차들을 멈춰세운다.

과속에 관해서도 신기하게도 시내에 과속 카메라가 없는 데도 다들 속도를 잘 지키는 모습이 신기했다. 한국에서 1km만 운전해도 수차례 과속 카메라를 볼 수 있었다 나에게는 그 모습이 더욱 이질적이었다. 우리는 민식이 법이니 뭐니 해서 더더욱 규제만 늘어가는데 그 모습과는 꽤나 상반되었다.


왜 미국 운전문화는 점잖은걸까?

사람들과 모여 이야 할때면 종종 이런 미국의 운전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각자 생각한 이유를 늘어놓곤 했다.

“미국은 총이 있으니까 한국처럼 보복운전 같은거 하다간 총 맞을까봐 안그러는 거야”

“경찰의 힘이 세니까 여기선 함부로 운전하지 않는거야”

“미국 차는 선팅을 못하게하니까 서로 얼굴이나 표정을 다 볼 수 있어서 다들 착해지는거야”

여러가지 의견이 있었고, 나의 관점에서는 대부분 다 나름의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흔히 유튜브나 영상 플랫폼 등에서 ‘천조국’ 혹은 ‘불곰국’ 등의 이름을 걸고 운전 중 싸움이 벌어질 때 트럭 트렁크에서 사냥용 총 같은 것을 꺼내드는 웃긴 영상들을 본 상상력으로 나오게 된 농담일 수도 있지만 왜인지 나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인 것 같다. 요즘은 총기사고 소식도 더욱 많이 들려오니까.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픽업트럭들. 일반 차량에 비해 차고도 높고 차폭도 넓다. 엔진이 특별히 우월하진 않은거 같은데 왜 속도가 더 빠른지는 의문이다.

경찰의 공권력 또한 미국은 상당히 강한 편이다.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을 때 정차(pull over)를 하지 않고 계속 주행하다간 추격을 당하거나 충돌을 통한 제동을 당할 수도 있다는 영상들 또한 돌아다닌다. 미국 처음왔을 때에도 들었던 조언 중에 혹시나 경찰이 차를 세우면 두 손을 핸들에 올리고 내게 총이 없음을, 혹은 총을 쥘 의사가 없음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을 만큼이니 말이다.

사실 다른 무엇보다도 나는 선팅을 못하는 것이 이런 분위기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가장 큰 기여를 한다고 생각한다. 선팅을 아예 혹은 거의 하지 못하다보니, 교차로에 서있다보면 건너편의 차 운전자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까지 다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혹시나 상대방의 양보에 감사를 표시할 때면 손을 들기도 하고, 운전을 이상하게 하는 상대방에게는 양 팔을 들어 ‘어이가 없다’라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여기서 핵심은 손짓이나 표정을 통해서 차량 간에 소통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던 것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짙은 선팅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경적이나 비상등을 통한 수단 외에는 딱히 의사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창문열고 손가락으로 욕하는 몰지각한 경우는 빼자)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가 갖춰지는 것 같다. 이곳에서 꽤 오랜시간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그들의 방식을 배워 손을 들어 감사를 표하곤 한다.


미국이라고 다 착하게 운전하는 건 아니야

이제껏 미국의 운전문화를 칭찬했지만 사실 항상 미국인들이 성숙한 운전문화를 보이는 것 만은 아니다. 왜인지 고속도로에만 올라서면 시내에서는 그토록 점잖던 이들이 레이서가 되는 모습도 참 적응안되는 모습이다. 특히 산을 구불구불 올라가는 왕복 2~4차선 남짓 좁은 고속도로에서 (사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도일 것 같다) 시속 100~120km로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속도를 맞춰 달리자면 아찔하기 까지 하다.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70번 도로. 2차선이지만 차들이 몹시 빠르게 달려 버겁다.

또한 시가지를 벗어나 외곽의 한적한 도로를 달리다보면 나도 모르게 과속을 하는 경우들이 많고 이걸 잡기위해 잠복하고 있는 경찰차 또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직까진 운이 좋게 한번도 걸린 적이 없지만 주변에서는 Speeding Ticket (과속 딱지)를 끊었다는 경우가 꽤 있다.

또한 주마다 운전하는 분위기의 차이가 있는데, 내가 사는 곳은 비교적 천천히 운전하는 편이지만 다른 곳은 심한 곳도 있다고 한다. LA나 뉴욕 같은 도심지는 차량과 보행자 모두 신호를 신경쓰지 않는 말도 안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아침에 복치와 커피를 사러가는 길에 횡단보도에서 우리를 보고 멈춰서는 차들과, 거리가 너무 가까워 미처 속도룰 줄여 멈추지 못한 차량 운전자가 우리에게 손을 들어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을 보며, 미국에서는 보행자 사고가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복치가 ‘뉴욕은 아닐걸’ 이라고 말했고, 나도 다른 지역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우리나라도 보행자들이 좀 더 안전한 환경, 그리고 운전자들끼리 좀더 인간적인(?) 수단으로 소통하면 화가 적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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